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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데크만의 베이스캠프
등산여행, 경북, 강원, 충북이 만나는 김삿갓 생가 본문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사람이 태어난다.
강원도에는 웬만한 산들이 1000m를 훌쩍 넘긴다. 그래서 등산여행하면 강원도를 첫손에 꼽는 것, 설악산, 오대산을 시작으로 기라성같은 명산이 줄지어 있다. 영월군 쪽으로 김삿갓마을을 등산코스로 경유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바로 마대산(1052m)이 김삿갓 유적지들을 품고있기 때문이다. 마대산은 강원도, 경상북도, 충청북도의 접경지로 유명하기도 하다.
마대산 등산 코스
마대산 기슭에는 김삿갓문학관과 노루목의 김삿갓묘역이 있고, 김삿갓 생가라고도 부르는 김삿갓 주거지가 마대산 중턱에 있다. 김삿갓면 와석리에 있는 마대산을 완주하려면 8km정도 걸어야 하고, 약 4시간 30분이 걸린다. 등산여행 코스는 김삿갓 묘역에서 출발할 경우, 1.8km, 약 25분을 걸어 김삿갓주거지에 도착한다. 생가 도착하기 전에 충북 단양과 김삿갓면이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경북 영주와도 길이 통해있으니, 지리산 등, 지역의 접경지를 골라 등산여행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시작과 끝을 김삿갓 마을에서 하고 싶다면, 마대산 정상에 올라 처녀봉, 산낙골을 거쳐 출발했던 김삿갓 묘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내가 간 날은 폭염으로 등산여행객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휴대폰으로 폭염경보가 내려있는 상황. 나는 김삿갓 주거지까지만 올라갔다 오기로 했다.
김삿갓 붐을 일으켰던 김삿갓 무덤
마대산 등산여행이 시작되는 김삿갓 묘역, 지금의 김삿갓 마을이 있게 만든 곳이다. 1984년, 처음 이 무덤이 김삿갓 묘임이 확인되어 비석이 세워진다. 이후 2009년에 영월군은 기존 지역 이름이었던 하동면에서 김삿갓면으로 개명한 것이다. 그리고 각종 관광시설과 전통 서민마을 컨셉의 음식점들과 펜션 등이 들어섰다. 김삿갓이라는 이름 하나가 이 골짜기까지 길을 놓고, 건물들을 짓는다.
김삿갓이 한 일이라곤 전국을 떠돌면서 무전여행했던 것 밖에 없다. 한 사람의 이름을 마을 이름으로 바꾸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렇다면 장영실이 태어난 곳도 장영실마을이라고, 이순신이 태어난 곳도 이순신마을이라고 해서 관광지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위인전기에 등장하는 이른바 '훌륭한'인물들은 낭만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착하거나 아름다운 것, 그 너머에 있다. 최근 아프리카, 트위치 등 인터넷 개인 방송이 열기를 띄는데, 여기서 인기를 끄는 BJ들은 연예인처럼 예쁘거나 잘생기지 않았고, 사회운동가들처럼 숭고한 이상으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기가 막히게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 푼수처럼 굴기도 하고 양아치처럼 욕과 막말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런 BJ들에게 보통사람이 가진 보통사람 아닌 면을 발견하는 게 아닐까? 자신이 한번쯤 취했던 포즈를 다른 사람의 사생활 속에서도 발견하고 싶어하는 마음 말이다.
김삿갓이 가족들을 버리고 팔도를 유람한 것,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마음껏 조롱하며, 얽매이지 않는 말을 멋들어지게 했던 것. 그는 누구나 하고 싶었던 행동을 누구나 할 수 없는 예술 속으로 승화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누구나 자유인이 될 수 있지만 자유인이 되려하지 않는다. 방랑으로 향하는 여정의 낭만, 이것이 그를 좋아하게 만든다.
마대산은 아직도 오지
애시당초 차가 올라올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전화가 안 터진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그래도 길이 이렇게 멀쩡히 포장되어 있는데 말이다. 마대산은 조금만 올라와도 무선 인터넷은 커녕 통화, 문자조차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김삿갓 주거지까지 다 올라오고, 내려갈 때까지 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만큼 아직 사람의 발길이 덜 미친 구역이라는 반증도 된다. 김삿갓 유적지를 찾아 이곳에 들른 사람도 김삿갓 무덤까지는 쉽게 가지만 생가까지 다녀오는 이는 적다.
마대산은 사람이 적은 만큼 숲은 울창하고 물은 맑다.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우거지기로 유명해 산과 숲을 좋아하는 산악인들을 끌어당긴다. 여기에 마대산 밑에는 김삿갓마을과 각종 편의시설이 있으니 등산여행 코스에 넣기 좋은 곳이라고 추천할 만 한 것이다. 가는 도중에 김삿갓이 쓴 시들이 현수막에 걸려있다. 속세의 거추장스러운 차림은 훌훌 던져 버리고 삿갓 하나 쓰고 걷는 기분이라는 게 이런걸까? 그의 삿갓은 모자면서 우산이자 양산이었을 것이다. 그를 보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사로잡혀 눈치보고, 옷차림에 신경쓰는 자신을 비춰본다.
마대산이 아직 오지라고? 김삿갓은 떠돌면서 스스로 오지가 되었다. 마대산은 밑의 관광지보다 아직도 김삿갓스러움이 넘치는 산이다.
충북 단양, 경북 영주와의 접경지역
마대산은 영월군 김삿갓면, 충북 단양군 영춘면, 그리고 경북 영주까지 아울러 갈 수 있는 등산여행지다. 크게는 국경부터 작게는 마을 단위까지 지역이 나뉘는 곳은 사람살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접경지역은 다른 문화가 마주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투가 섞인다고 하나?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본인의 억양을 가리켜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표준말을 하려 애쓰는 말투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게 또 하나의 개성이 된다. 강원도의 말투는 뭐랄까, 소박하면서 약간 조선족(?) 어투가 서렸다고나 할까? 그 강원도의 방언과 경북의 억양 센 소리와 충북의 느리게 둘러치는 말투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김삿갓 묘역에서 김삿갓 생가에 닿기까지 길을 가로질러 흐르는 냇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처음에 이게 별로 깊지 않은 것 같아 밟았다가 발목까지 젖어 낭패를 봤다. 이런 곳이 김삿갓 생가까지 11곳이 있더라. 그날 햇볕이 얼마나 따가웠는지 김삿갓 생가까지 오고 가는 길에 거의 다 마르긴 했지만 말이다.
김삿갓 주거지
전쟁이 벌어져도 영향이 없을 정도의 산지 마을에 둔(屯)이라는 접미사가 붙는다. 이 김삿갓 생가 구역도 어둔(於屯)이라고들 불렀다. 그래서 둔이라는 지명은 세상의 여파가 미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김삿갓은 영월이 아닌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고, 생가라고 흔히 불리는 이곳은 김삿갓 주거지라고 부르는데, 알려지기로는 김삿갓의 어머니가 아무도 모를 곳에 터를 잡았다는 집터다. 김삿갓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에 투항한 죄로, 그들의 후손이 벼슬길이 막히는 페널티를 입었던 것이다. 아마 그 페널티를 가장 조기에 종식시킬 방법으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살면서 일족을 보존하는 것을 택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들인 김병연(김삿갓)이 백일장에서 제 할아버지를 할아버지인 줄 모르고 욕을 하는 시를 썼다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은둔과 방황을 시작한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이 집은 그의 어머니가 김삿갓을 지켜주기 위해 만든 터전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김삿갓으로 하여금 방랑하게 만든 터전이 된 것이었다.
김삿갓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
조상욕에 의한 방랑모드 돌입이라는 김삿갓의 이야기는 와전된 것으로 현재 공론화되고 있다. 당시 김삿갓은 세도가 심했던 안동김씨, 그 중 가장 위세있던 장동 김씨였는데, 당시 문벌가에서는 족보를 달달 외우고 있었다. 적어도 자기 할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알았을 거란 이야기다. 게다가 백일장에 나가려면 제 조부와 아버지 이름을 쓰게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김삿갓이 자신의 조부를 조부인지도 모르고 욕한 그 백일장 답안지는 그가 쓴 것이 아니라는 것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의 라이벌이었던 노진이라는 선비가 자신이 생각할 때는 별 거 아닌 인물인 김삿갓이 전국을 떠돌며 호응을 얻자, 이를 분히 여기고 공격하기 위해 작성했다는 론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대인, 또다른 방랑자들
마대산에 있는 김삿갓 생가, 김삿갓 주거지는 경북과 강원, 그리고 충북이 만나는 접경지에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역마살 실린 운명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김삿갓 주거지는 마대산 중턱에 남아 200년 전, 돈도 명예도, 신다 버린 신발로 여기고 평생을 돌아다닌 그의 기구한 인생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등산여행도 산과 나 사이에 세상의 다른 것은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는 맛이 있는 것이다.
김삿갓 무덤부터 그의 생가(주거지)까지 올라가는 길에 발은 물에 젖고, 온몸이 땀에 젖으면서 200년 전의 김삿갓이 내 몸에 들어 온 것 같다.나는 김삿갓처럼 방랑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고 문득 생각한다. 앞만 바라보고, 뒤를 바라볼 때는 그 곳이 무덤인 여행 말이다. 김삿갓의 방랑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갈 곳을 잃어가는 현대인에게도 전해주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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