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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터미널에서 무등산 원효사 종점까지 1187번 버스 본문

국내여행/전남

광천터미널에서 무등산 원효사 종점까지 1187번 버스

Dondekman 2017. 1. 1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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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싶다, 갈 것이다, 가고있다.

광주에 갔다. 전주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 좀 더 걸리더라. 월요일, 평일이라 버스는 한산했고, 여행 차림 물씬 풍기는 아가씨들만 듬성듬성 좌석에 등을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 주말에 전주 놀러왔다가 광주로 돌아가는 걸까? 나는 반대로 광주로 가는데.

퇴사 기념 여행이다. 회사에서 철수하자 마자 바로 출발이네. 회사 다니면서 뿐 아니라 혼자서 1박 이상 여행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자가용이 없을 뿐더러... 어쩌다 며칠 쉬게 되어도 여행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리더라고. 그래서 뱅뱅 돌린 투포환을 놓듯이 한번 날아가보기로...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은 해외를 가는데, 나는 일단 그냥 남도나 돌고 오려고.



유스퀘어다. 광주 서구 광천동 네거리에 있는 광천터미널. 유스퀘어에서 U는 You, Youth, 둘 다 의미한다고 한다 스퀘어가 광장이니까 당신의 광장, 젊음의 광장이 되는 셈이다. 나는 터미널 모양이 U자처럼 생겨서 그런 줄 알았네. 

무등산에 가보기로 한다. 뭐, 저녁 6시에 지인을 만나야하니까, 그 전까지 어딜 찍고 오고 싶었던 것. 터미날 앞에서 1187번을 기다린다. 아, 근데 인터넷 지도에는 도착 20분 전이라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안가나. 유스퀘어를 한 층, 한 층 올라가 5층에 있는 CGV 상영관까지 두리번거리다 왔다. 2층에는 찜질방 사우나도 있고, 에슐리, TGI같은 메이커 뷔페들이 많더군. 한 번 둘러봐도 도착 10분 남았길래 또 가서 이번에는 서점 구경하다 옴. 



1187번 버스는 광천터미널 - 화정중흥파크 - 광주역 - 대인광장 - 문화전당역 -법원입구 - 산수무등파크 -4수원지, 해서 원효사 종점으로 이어진다. 산수무등파크에서부터 갑자기 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하더니 계속 올라간다.

카카오톡으로 지인한테 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고 하니까 "네, 이제 무등산이예요 창문 열고 숨쉬어봐요 바람도 만져보고, 한참 더 올라야 해요." 란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창문을 열고 숨쉬어본다. 숲 냄새가 나네. 그보다 그녀의 말투는 마치 무등산을 모시는 사제같다. 그녀의 진지한 표정이 생각나 혼자 웃었다.



차창 밖 나무들 한 컷. 가까이 있는 나무들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그 틈으로 보이는 산의 나무들은 그대로 있다. 울창한 숲이든, 깊은 바다든 넓은 미개척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공포감을 준다.  

갑자기 핸드폰이 떨어졌고 뒷자석에 앉은 여자분이 주워준다. 나이는 40대 정도? 아까부터 사진 찍는 걸 보았는지 내게 "산에 자주 오세요?" 묻는다. 내가 아니라고, 여행 온 거라고 하니까 갑자기 쪽지 하나를 건넨다. 



헐, 시간대별로 버스 시간표가 적혀있다. 이 아주머니, 온몸을 등산용품으로 두르고 계시던데, 이런 것까지 가지고 있다. 내 카카오톡을 보낸 지인에 이어 무등산을 섬기는 여사제를 또 한 명 만난 것 같다. 길가다가 만난 우연치고는 절묘한데? 수기로 적은 이 노선표는 웬지 여행을 앞두고 부적을 받은 기분.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었는데 원효사는 안나오고 숲길만 한가득이다. 분명 지도에는 바로 옆이라고 나와있는데... 걷는 게 질릴 정도로 꽤 오래 걸은 것 같다. 제법 넓은 등산로인데도 양옆에서 나무들이 울창해 지붕이라도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오후가 지나가면서 어둑어둑해지는 기미가 보이기도 하고, 이러다있간 가려던 원효사는 못 가고 무등산에서 길 잃어버리는 거 아닌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엄마곰이랑 아기곰이랑 막아세우는 포즈 귀엽다 ㅋㅋ

2킬로미터는 평지면 갈 만한데 산길은 빡세다. 그리고 7월이잖아. 엄청 덥고, 어쨌든 원효사에 도착했다. 알고보니 내가 일반 등산로 코스로 뺑 돌아온거. 어쨌든 절 안에 약수터도 있어서 목 마른거 해결한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가 이런거지.



회암루라는 정자는 2층은 정자고 1층은 출입구다. 

회암루에서 무등산을 바라본다. 오른쪽으로 가장 멀리 보이는 것이 의상봉(548m). 무등산이 1187m니까 무등산 딱 반절이 저정도 높이다. 내가 지금 있는 이곳도 광주시내에서 버스로 꽤 가팔르게 올라왔는데... 산이 1000미터를 넘어가면 역시 만만치않네, 그럼 8000미터 산들이 즐비한 히말라야 사는 사람들한테는 이런 곳도 그냥 마트가는 수준일까? 

무등산 원효사 길에서 등산인듯 등산 아닌 빡센 산책을 했다. 광천터미널행 1187번 버스를 다시 탄다. 가자, 지인 만나러, 아까 카톡 메시지로 이제 무등산이니 버스 창문을 열어보라던 그 지인, 무등산 여사제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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