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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체육관에서 추억의 영화 <록키>

Dondekman 2017. 2. 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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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로부터 전설은 시작된다.

김기수는 한국인 최초의 복싱 세계챔피언이다. 권투는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참 인기였는데, 그래서 권투만화나 영화도 많이 나왔다. <록키>가 대표적이고, 일본만화 <더 파이팅>, <내일의 죠>도 생각나네. 김기수가 훈련했던 체육관이었던 여수체육관은 지금은 비어있지만 김기수 체육관이라는 이름으로 고소동 천사벽화 마을 한켠에 남아있다.   



드디어 벽화마을이 있는 산동네를 다 올라왔다 싶어 한 숨 돌리고 있는데 내 앞을 가로막는 화살코 캐릭터. 세계챔피언 김기수 선수다. 지금은 고인. 1997년에 돌아가셨다. 김기수 선수는 WBA, WBC에서 각각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WBA같은 게 뭐냐면 대회를 주도해서 니가 챔피언이다, 지목해주는 권투협회다. 세계 3대 프로복싱 국제기구에는 WBA(세계복싱협회), WBC(세계복싱평의회), IBF(국제복싱연맹)이 있다. 그러므로 흔히 복싱 세계 챔피언이다, 그러면 각 체급별로 3명의 챔피언이 있는 것이다.

김기수 선수는 고2때 도쿄에서 열린 3회 아시안게임에서 웰터급 금메달을 땄으며, 61년에 프로로 전향하기 전까지 아마추어 전적 88전 87전 1패를 기록한다. 그리고 65년에는 미들급 동양챔피언에, 66년에는 마침내 세계챔피언에 오른다. 한국인 최초다.



지금은 보도블럭에 민망할 정도로 잡초가 무성한 김기수 체육관. 지금 우리나라 복싱 인기도 과거에 비하면 민망할 정도다. 복싱 관련자들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6, 70년에 고달픈 경제발전 과정을 거칠 때는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는 복싱이 인기였지만, 그 뒤 야구와 축구가 부상하면서 아무도 권투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국내 격투 경기의 인기는 UFC같은 이종격투기로 흡수되었고, 천하장사 씨름선수였던 최홍만이 K-1무대로 간 것처럼 우리나라의 마지막 국내 세계챔피언이었던 지인진 선수도 이종격투기로 전향한 바 있다. 



하기만 아직도 권투는 맨손으로 한 세상 재패하는 청춘의 상징이며, 가진 건 부르쥘 수 있는 주먹 뿐인 이들의 이른바, 주먹이 우는 스포츠로써의 묘미가 있다. 영화 <록키>를 찍었던 미국 필라델피아 박물관 앞 계단에는 지금도 아침마다 수건 하나 두르고 록키 코스프레를 하는 이들이 있다. <록키>의 감독이자 주연인 실베스타 스텔론은 포르노 배우를 해야했을 정도로 서러운 무명시절이 있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세상의 무명선수라는 자신의 처지를 록키라는 캐릭터에 녹여냈고, 아이러니하게도 <록키>의 흥행으로 실베스타 스탤론은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액션배우로 발돋움한 것이다.

영화의 록키 훈련장면을 보다보면 정육점에 매달린 고기를 샌드백처럼 두들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거 파는 고기 가져다가 저렇게 하는건가? 연육은 잘 되겠다, 생각이 든다. 두드려맞는 정육점의 날고기가 특유의 헝그리정신과 야생적인 힘을 영상적으로 보여주는 듯. 그리고 록키가 시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달릴 때, 상인이 던져주는 과일을 받으며 인사하고, 가게일을 보고 있던 남자 아이들이 뛰어나와 박수 쳐주는 장면이 참 훈훈하다.

내편이 아닌 세상을 향한 오기와 집념을 담아 하루하루 주먹을 뻗어본다는 것. 청춘의 특권일 것이다. 김기수 체육관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록키>를 오랜만에 다시 봤다. 아무도 없길래 록키처럼 풋워크 시늉하면서 툭툭 주먹을 뻗어보았는데, 이거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물론 뙤약볕에 먼길을 걸어서 더위 먹기 직전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쥔 주먹에도 내가 잡을 수 없는 것들이 스며들어 와 있었다.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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