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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데크만의 베이스캠프
중국역사, 모택동 혁명의 열사공원 본문
우리의 미래도 이렇게 탁 트여 있었으면 좋겠어.
장사에 있는 열사공원은 넓다. 36만여평으로 여의도공원의 5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열사공원은 1951년에 세워진 장사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원으로 중국역사, 특히 공산혁명이 일군 중국의 현대사를 상징한다.
열사공원
烈士公園, Hunan Martyr's memorial park
열사공원은 우리나라로 치면 현충원과 같은 존재다. 이 공원이 하필이면 호남성 장사시에 세워진 건 공산혁명을 지휘했던 모택동의 고향이 장사시라는 데서 기인한 듯 하다. 모택동은 중국어 발음으로 마오쩌 뚱.
마오쩌 뚱, 하니까 옛날에 학원 선생님 생각이 난다. 여자였는데 좀 통통한, 육덕진? 스타일이었다. 아이들이 "하반신 뚱"이라고 별명을 부르며 놀렸던 생각이... 생각해보니까 중국어는 우리나라에서 기피하는 발음이 많다. 뚱, 쫑, 꽁, 쫜~
마오이즘
모택동은 중국사람들에게, 특히 중국의 옛 세대에게는 예수와 같은 존재다. 그는 1930년대, 40년대의 공산혁명전쟁을 기적처럼 승리로 이끌었다. 장개석이 이끄는 70만군의 국민당군에 맞서 8만의 홍군은 숫자는 보잘것 없었지만, 민중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지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민심을 얻은 홍군이 승리하여 지금의 중국 정부가 된다.
이때 중국역사 사상 유래없이 청렴하며 정의에 넘쳤던 모택동의 지도는 개인보다 공공의 이익에 우선하고, 민중들에게 정치의 길을 물으며, 아울러 실사구시의 사고를 한다. 뒤에 이같은 생각을 기반으로 한 모택동 사상으로 발전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 슬로건이 되는 마오이즘(Maoism)라는 말이 있을 정도.
홍군의 대장정
남문에서 걸어서 10분이면 중앙의 호남열사공원 기념비까지 갈 수 있다. 점차 가까워지는 기념비의 모습이 꼭 등대같다는 생각을 한다. 중국역사의 등대다.
사람들이 건축물을 누리며 생기는 감정도 애초에 건축 의도에 반영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저 기념비를 향해 걷는 이 길은 공산혁명 당시의 대장정을 생각하게 한다. 대장정(1934~1936년)은 궁지에 몰린 모택동의 홍군이 9600km의 거리를 걸어서 중국 옌안으로 탈출한 사건. 홍군은 탈출에 성공하지만 애초에 출발했던 86000명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7000명 뿐이었다.
중국역사의 등대
장개석 측에서는 공산당은 끝이라며 안도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이후 장개석은 중일전쟁의 패배와 극도로 부패한 조직때문에 몰락해갔고, 모택동은 대장정을 하는 동안 농촌의 민심을 얻었다. 중국 국민들은 당시 홍군의 도덕성에 매료된다.
홍군은 인민의 바늘 하나, 실오라기 하나라도 공짜로 취하지 않는다, 로 시작하는 3대 규율, 8항 주의로 극한의 전쟁을 수행하면서도 도덕성을 잃지 않는다. 가는 곳마다 약탈이었던 국민당 군대와 상반된 모습으로...
모택동 정권의 과오
중국역사의 등대라.. 그렇다 확실히 모택동의 홍군은 사리사욕 없이 숭고할 정도의 혁명정신으로 무장했었다. 그러나 그 숭고함이 아군과 적군이 분명한 전장에서는 등대가 될 수 있으나, 거대한 국가기관이 되어버리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이후 모택동의 정권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약 2000만명의 희생자를 내고, 문화혁명으로 인해 발생한 내전 등으로 1000만명이 죽는다. 그러니까 중국은 인구가 많아 방향 설정이 잘 못 되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다치는 것이다. 중국은 아직도 중국역사에서 일어난 이같은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규명과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남대문에서 출발해 중앙의 호남열사공원 기념비까지 간 길을 빨간색으로 표시해보았다. 여기까지 가는데 10분 걸렸으니까 웬만한 대학교 캠퍼스 2~3개 정도 합친 크기 정도 되는 것 같다.
열사공원 기념비는 비석이자 기념관이다. 높이 38.6미터. 열사공원이 조성된 지 8년만인 1959년에 지어졌다. 들어가보지는 못했는데, 열사공원 기념비 안에는 주요 혁명 인사였던 90여명 사진과 76000여명의 명단이 있다고 한다.
열사공원 기념비에서 바라보는 호남성 장사
열사공원 기념비에서 바라보는 장사시의 모습. 아까는 현재에서 중국역사를 바라봤다면 지금은 중국역사에서 현재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최근 연세대학교에서 도울 김용옥이 강연한 "새 한국의 미래, 중국의 미래"[링크]라는 강연을 들어선지 중국의 이야기가 유난히 가깝게 다가오는 것이다. 중국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뭐니뭐니해도 목숨을 걸고, 목숨보다 더한 대의를 걸고 혁명을 완수했던 옛 중국인들의 결기가 이 탑에 모여있다. 어떤 국가 의식을 떠나 혁명은 아름답다. 열사공원을 돌아보며 혁명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었던 혼이 내가 만들어갈 미래에도 스며들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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