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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서울여행기(홍대걷고싶은거리~예술의 거리)

Dondekman 2017. 2. 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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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성을 간섭당하지 않는 곳을 찾아서

서울여행이라고 하면 어디를 갈까? 북촌 한옥마을? 종로, 명동? 이국적인 번화가 이태원? 이들은 대부분 최근 서울시에서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관광특구 지정을 앞두고 반대여론이 유난히 심해 특구 지정이 정체된 곳이 있다. 바로 홍대앞 거리다. 

이미 홍대는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2015년 서울여행을 한 외국인 1100만 명 중에서 반절 이상이 마포구를 다녀갔다. 그래서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진작부터 홍대앞에 관광 안내소를 설치하고 홍대걷고싶은거리, 클럽거리, 예술의 거리 등으로 명칭을 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금의 홍대를 만들었던 홍대 고유의 예술 기운이 상업지대에도 묻어있다. 그러니까 예술적인 곳에 상업이 왔고, 상업적인 곳에 예술적인 문화가 묻어나게 된 것이 지금 홍대의 상태다.



붐비는 예술의 거리, 상상마당이 있는 쪽이다. 이곳은 잔다리로라는 도로명을 가지고 있는데, 옛부터 잘디잔 다리들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홍대입구역이 생기면서 상가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 상업화 속도가 신촌보다 더뎠다. 때문에 신촌에서 활동하던 돈 없는 예술가들이 지금의 예술의 거리로 유입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홍대에 온 예술가들은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었다. 여기에 사람들은 그 문화를 보러 홍대에 가게 된 것이다. 홍대라는 서울 여행지의 형성 과정이다. 


왜 홍대 사람들은 관광특구 지정에 반대할까?

서울 여행자들이 모인 자리에는 새로운 시설이 들어서고, 그 재개발은 기존 문화의 파괴를 의미한다. 별 다방 있던 자리에 스타벅스가 오게 되는 것이다. 더 쾌적할 수 있겠으나, 처음에 그곳을 그곳이게 했던 매력은 사라지는 셈이다. 재개발을 못하게 하면 된다, 라고? 무슨 근거로. 관광지의 상업화는 개발을 막는 그린밸트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홍대거리와 같은 특정구역에서의 점포만 사고파는 일을 금할 수 있는 제도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은 시장경제체제의 사회다. 

결국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기존 토착민(?)들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연남동, 상수, 합정으로 이동했고, 곧 그곳 역시 상업화를 맞이했다. 지금은 이른바 신홍합(신촌, 홍대, 합정)이라고 해서 높은 임대료의 상징이 되고 있다. 쫓겨난 자들은 다시 다른 곳으로 쫓겨나 그들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도시순환을 가르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라고 한다. 서울여행은 거대자본이라는 스토커를 달고 다니는 셈이며, 이쯤 되면 왜 홍대의 문화에 자생하는 자영업자들이 관광특구 지정에 반대하는 지 명확하다.

  


이곳은 홍대앞 거리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홍대 걷고 싶은 거리다. 홍대정문인 홍문관부터 홍대입구역 9번 출구까지 이어져 있는 이 대로변에서는 금요일과 주말이면 젊은이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길가의 고깃집, 횟집에는 빈 자리가 쉽게 나지 않고, 거리 이곳 저곳에는 악기 하나를 든 1인 가수부터 고등학생 댄스팀까지 다양한 길거리 공연이 펼쳐진다.  80년 전반기까지만 해도 여기에는 당인리선 철도가 깔려 있었고 방송소앞역이라는 간이역이 있었다. 걷고싶은거리가 위아래로 높이를 달리하는 2개의 길로 조성된 것도, 일부러 조성한 것이 아니라 원래 땅이 그렇게 생겨서 그런 것이다. 지금은 아랫쪽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면 윗쪽에서 보기 편하게 되어 있기는 하다. 


홍대에서 "나는 진정한 생산자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예술적 에너지와 상업적 에너지가 희석되어 흐르고 있는 홍대앞 걷고싶은 거리와 예술의 거리, 서울여행을 한다면 한번쯤 이곳을 걸으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모양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의 여행자들이 서울의 자본과 예술가들의 구역을 바꿔놓고 도시의 모양을 만든다. 번화가를 이동시키는 건 이들이다. 이 젊은이들이 40대, 50대가 되었을 때, 이곳의 모양은 어떻게 바뀌어있을까? 

서울여행과 도시의 변화에 대고, 나 자신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20년, 30년 뒤의 내 모습을 또 어떨까, 궁금해지기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맞을 수 있을까? 나는 자기 터를 지켜 살아남는 생산자가 될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먼저 주체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누군가를 휘두르지 않고 나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해본다.

나도 순수예술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아직은 주류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머지않아 그럴 것을 생각하며 습작하고 있다. 나는 때로 나 혼자서 이렇게 골방속에서 뭔가를 한다는게 안타깝고, 화도 난다. 누군가 봐주었으면, 많은 사람이 봐주었으면 한다. 그런데 때로 그런 생각이 내가 하는 순수예술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순수성과 대중성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서울여행 사진을 정리하다가 잘 못 찍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공연자를 찍으려다 관중에게 촛점이 엇나간 것이다. 촛점이 중요한 곳을 짚어 선명하도록 하는 기능이라면, 내가 하려고 하는 예술이 작가보다 관객쪽으로 촛점이 쏠려, 좋지 못한 성과를 낸다는 느낌이 있다. 이는 지금의 홍대앞 거리에도 적용된다. 문화 생태계도 사람들의 발길에 파괴되는 자연 생태계와 같은 속성이 있다. 여행지가 찾아오는 여행자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연의 개성은 퇴색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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