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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북

역사여행, PNB전주풍년제과 수제초코파이 속 한국사

Dondekman 2017. 6. 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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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쌓이면 아름다움이 된다.

역사여행은 그런거다. 흐르는 시간은 환경을 바꾸어놓지만, 바뀐 환경에 자신을 적응해서 살아남는다는 것. 그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나도 저 거대한 시간의 일부가 되어 조금이나마 아름다움에 동참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유적지를 찾고, 오래된 거리를 걸어보는 역사여행은 그래서 아는 것만큼 보고, 느낄 수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PNB전주풍년제과 경원동 본점에 갔다. 수제초코파이를 먹으며 역사여행을 하고 왔다.


PNB전주풍년제과 경원동 본점


역사여행, Since 1951

전주초코파이로 유명한 PNB전주풍년제과는 1951년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생긴 제과점이다. 그리고 60년,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서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그 와중에 창업했던 고 강정문 옹은 101세의 나이로 2012년 돌아가셨고, 지금은 딸, 손자까지 3대째 명맥을 잇고 있다. 



내가 인생에 파도가 좀 많아~ <타짜>의 곤이(조승우 분)가 한 말에 에이구, 파도없는 인생도 있냐? 라고 대꾸한 고광렬(유해진 분)의 말처럼 오래된 장소에도 역시 파도가 많다. 이 파도를 서핑해보는 게 역사여행.



2층 테이블 자리 한켠에 전주 PNB풍년제과의 옛날 사진들이 있어 찾는 사람의 역사여행을 돕고 있다.


역사여행, 50년대


창업

전주풍년제과는 일제시대 때 강정문 옹이 센베이 만드는 기술을 배워 해방 후 세운 가게다. 이후 풍년제과는 1958년에 일본에서 소프트아이스크림 기계를 들여오고 1959년에 에어컨을 다는 등, 첨단을 달리는 지역명물 제과점으로 자리잡았다.  

1951년 전주풍년제과의 사진. 1951년은 한국전쟁이 한참 치열한 와중이었다. 전쟁이 시작된지 1년만에 전선이 고착되고 10월부터는 판문점에서 휴전회담이 열렸다. 휴전회담은 2년동안 지리하게 이어졌고 그 와중에 영화 <고지전>의 내용처럼 남북의 접경지대에서는 고지를 뺐고, 뺐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역사여행, 60~70년대


성장

승승장구하는 전주풍년제과. 60~70년대는 제과점의 확장기였다. 가족들이 모두 사장과 직원으로 운영에 참여하면서 직원만 40명을 뒀다. 이후 땅콩센베이, 생강센베이를 비롯해 단팥빵과 곰보빵으로 전주풍년제과는 전주를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전북 익산으로 체인점을 낸 것도 이때다. 

70년대, 전주제지 창업때는 창립식 때 쓸 케이크와 빵을 입찰하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전주 경제발전에 주춧돌이 된 전주 팔복동 1, 2공단이 이때부터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데, 그러고보면 한국사에서 60년대~ 70년대는 나라 전체가 경제개발에 엑셀레이터를 밟았던 때였다. 박정희 정권, 유신시대였다. 


역사여행, 80년대


반목

성공가도를 달리던 전주풍년제과는 80년대를 넘어서면서 명암이 엇갈린다. 바로 현재 PNB풍년제과의 사장인 김현희씨의 매형이 자신의 이름으로 풍년제과 이름의 특허를 낸 것. 이후 풍년제과는 소유주가 다른 두개의 전주풍년제과로 갈라진다. 

이는 1980년대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비슷하다. 남북 분열은 더욱 심해지는 가운데, 영남과 호남의 반목도 깊어졌다. 한국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색깔론을 내세워 호남 인사들에게 종북, 빨갱이몰이를 했다. 

사진은 1980년의 사진. 광주에서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였다. 


역사여행, 90~ 2000년대


위기

90년대, 풍년제과는 겉으로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부진하고 있었다. 간판은 같았지만 소유주가 다른 풍년제과가 서로의 이익을 저해했고, 지나친 체인점 확대 때문에, 체인점마다 서로의 이익을 저해했다. 급기야 마진 때문에 재료비를 줄이는 체인점들까지 나왔으니 거품이 오를 데로 올라온 상황이었다. 여러모로 98년 외환위기를 맞은 대한민국의 상황과 비슷하다.

2000년대 들어 경영은 더욱 어려워져, 적자가 계속된다. 2006년, 갈라져나온 풍년제과 측에서 다른 곳에 상표를 팔게됨으로써 드디어 오랜 가족분쟁이 끝나게 된다. 

가족분쟁과 상표분쟁이 별개가 되자 풍년제과 측에서는 즉시 상표소송을 냈고, 재판결과는 둘 다 풍년제과라는 상표를 쓸 수 있는 걸로, 대신 원조는 PNB라는 말을 붙이는 걸로 협상이 되었다. 현재 전주에 풍년제과는 5군데가 있는데, PNB Since 1951이라고 써 있는 간판이 원조, 즉 아들의 것이며, Since 1969라고 써 있는 것은 뒤에 사위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다.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같은 외래 체인점이 전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2000년대는, 보다 대형화된 전국적인 체인점들이 지역토종브랜드들을 먹어치우는 과정이 자주 일어났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였다.


역사여행, 2010년대


반전

부진일로를 겪고 있던 PNB전주풍년제과는 전주한옥마을[링크]이 관광지로 성공을 거두자 호재를 맞는다. 한옥마을에 갔던 관광객들이 전주명물이었던 풍년제과의 센베이와 수제초코파이를 다투어 사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충경로 사거리에 있던 본점은 2층까지 카페형으로 리모델링했고, 전주한옥마을 중심부인 공예품전시관 옆에도 지점을 내었다. 현재 한옥마을에 있는 지점은 1시간 정도 대기해야 수제초코파이를 살 수 있고, 1인당 5개로 갯수를 제한해야 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PNB전주풍년제과 수제초코파이


한옥마을에 있는 풍년제과가 너무 밀리면 10분 정도 걸으면 있는 이곳 본점에 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옥마을에서 이곳 경원동 사거리까지는 넓은 부지의 경기전[링크]이 중간에서 길이 되어준다. 역사여행 코스로 삼으면 좋을 듯.



50년대부터 이미 초코파이를 만들고 있었다?

원래 초코파이는 74년에 오리온에서 출시된 것이다. 그런데 1951년에 전주풍년제과에서 이미 초코파이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일반적인 초코파이가 마시멜로를 쓰는 반면 이곳의 수제초코파이는 크림을 쓴다. 



한 입 베어물자 수제초코파이 속의 크림과 잼, 견과류가 씹혀온다. 과자를 먹는 느낌이 아니라 빵을 먹는 느낌. 종래의 달달하고 부드러운 초코파이의 맛에서 달달함을 좀 줄이고, 고소함과 부드러움에 더 비중을 뒀다고나 할까? 우유와 함께 먹으니 잘 어울린다.

이 수제초코파이를 먹고 있으니까 60년 전 성실하고 솜씨 좋았던 한 제빵사가 떠오른다. 머릿속에서 초콜렛 쿠키 속에 크림을 넣고 부드럽게 만들어보겠다고 구상을 하는 그 순간, 그는 얼마나 기뻤을까? 나는 같은 장소에서 다른 시간 속의 그 인물이 되어본다. 역사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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