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얼굴이 있는 곳, 전주 경기전, 영화<광해>촬영지

그리는 데로 된다고 믿는다.

사진이 없던 시대에는 초상화라는 것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나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초상화 속에 그 사람이 혼백이 깃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여기에 왕의 얼굴을 본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고 보면, 왕의 초상화를 통해 왕의 혼백과 접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주 경기전이 그러한 장소다. 조선시대를 연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모신 곳, 왕의 혼백이 초상화 속에 살아있다고 믿은 그곳이다. 

경기전

慶基展, Jeonju Gyeonggijeon

경기전 앞을 지나는 길은 한옥마을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해서 길거리 공연하는 버스커들의 터전이 되었다. 2013년도 사진. 밤인데다가 꾸진 폰카로 찍어서 저렇다. 

내 사진첩 속에 이 콘서트 사진은 알아볼 수 없게 컴컴하고 기타 한 대만 어렴풋이 보였었다. 언제 라이브카페를 갔었나? 생각하다가 보정버튼을 누르니까 경기전 담벼락으로 밝아온다. 이때 나는 한옥마을 근방에서 한문 배우러 다니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수업 마치고 집에 가던 길에 찍은 사진인 듯.

정전

경기전 앞에 서 있는 하마비(下馬碑)는 여긴 신성한 구역임. 말에서 내려야함. 엄포를 놓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비석의 존재도 모르고 기타치고, 사람 만난다. 조선시대와 지금의 차이는 불과 100년인데, 사람들 생각하는 건 이렇게 다르다. 세상 변하는 게 재미있다. 

전주 경기전은 꽤 넓지만 대부분 공원이고, 핵심은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정전이다. 

홍살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정전.

이성계의 혼백이 다니는 길이라고 해서 신도다. 혼도라고 하면 이름 이상하니까 신도로 한 듯? 

이것이 국보 317호 태조의 어진이다. 아, 물론 이게 진품은 보호 차원에서 어진박물관에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떤 물건이 보는 사람의 생각에 의해 규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품과 짝퉁의 구분이 별로 의미없다고 여긴다. 미술관에 진품 작품이 왔다고 사람들이 떠들썩 해도 심드렁 하다. 

그나저나 왕의 초상화를 이렇게 극진하게 모신 건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이 아닐까? 모양이 성질을 지배하며,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고 생각한 조선시대 성리학.

조선시대를 느낄 수 있는 산책로

전주 경기전의 여타 구역을 돌아보면, 조선시대에는 조경을 어떻게 했는 지 느낄 수 있다. 오른쪽엔 이렇게 대나무 숲이. 

동문 쪽에는 조선의 8대왕 예종의 태실이 뭍혀 있다. 태실은 탯줄이다. 재위 15개월 만에, 20살에 죽은 왕이라니, 사람이 20살에 죽었다고 생각하면 뭔가 세상에 한 걸음을 내딛었는데 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안쓰럽다. 왕의 죽음이라면 더더욱.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서문 쪽에서는 먼 산을 배경으로 한 전동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건축과 비슷한 시대의 서양건축이 아련하게 만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도 이곳이라고 한다. 광해군으로 분장한 광대 하선(이병헌 분)이 왕비 유씨(한효주 분)에게 다가가는 장면이다. 그때 하선이 숨어있던 왕비 처소 담벼락이 바로 전주 경기전이었구나. 헤벌쭉 웃음 입 속에 이에 김을 붙여 썩은 이 흉내를 내던 하선, 웃기지 않소? 하자 유씨가 차분한 표정으로 웃기옵니다. 했던 대사가 머리에 맴돈다.

이렇게 동문, 서문을 돌아나오면 들어왔던 입구가 보인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어진박물관 표지판을 봤다. 스마트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조선시대 왕들의 초상화가 다 있다네. 여기까지 와서 안보고 갈 수가 없었다.

전주 경기전 관람요금

원래는 관람료가 있는데, 오늘은 매달 마지막 수요일인 문화가 있는 날이라고 해서 공짜였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그냥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성인 3000원, 전주시민은 1000원이다. 전주 경기전의 관람시간은 하절기(6월~8월) 9시~19시, 동절기(11월~2월) 9시~18시까지다.

문화해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11시~12시	한, 영	한, 영	한, 영	한, 영	한, 영	한,영,일,중	한,영,일,중
14시~15시	한, 영	한, 영	한, 영	한, 영	한, 영	한,영,일,중	한,영,일,중
16시~17시	한국어	한국어	한국어	한국어	한국어	한국어	한국어

어진박물관

조선시대 왕들의 초상화가 있다는 그곳이다. 여기까지 매고 다니느라 무거웠던 배낭을 카운터에다 맞기려고 하니까, 입구쪽에 놓아두면 된단다. 배낭을 벗자 어깨가 공중에 떠오른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진박물관[링크]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