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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시 모음의 <님의 침묵> 저자 한용운을 만해 기념관에서 만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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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시 모음의 <님의 침묵> 저자 한용운을 만해 기념관에서 만나다.

Dondekman 2017. 8. 1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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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룬 것은 모두 님입니다.

남한산성 행궁[링크]바로 옆,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만해 기념관이 있다. 만해기념관의 전시물들은 생가였던 서울 성북구 심우장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네. 현재 만해기념관은 민간이 운영하는 국가 지정 기념관으로 등재되어 있다. 입장료는 1000원. 

만해 한용운, 하면 떠오르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님의 침묵>이다. 나는 어렸을 적, 이별 시 모음이라고, 집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에서 그 시를 만났다. 시인이자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을 알게 된 건 한참 지난 후였고.


만해 기념관

Manhae Memorial Hall


돌비석에 써 있는 만해 기념관.

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자연에서 만들어진 단단함이 느껴진다. <님의 침묵>시에서 만난 만해 한용운 시인의 질감과 닮았다. 


태블릿 전시관

만해 기념관 실내는 그리 넓지는 않았다. 그래도 태블릿형 게시물로 공간을 절약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그런지, 전시물의 가시성과 가독성이 좋았다.

뜻을 세우다, 3.1운동의 선봉에 서서, 로 이어지는 챕터들이 만해 한용운의 생애를 따라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냥 한 번 둘러보기만 했는데, 장문의 평전을 읽은 느낌, 혹은 어렸을 적 <님의 침묵>이 있었던 '이별 시 모음' 시집 페이지들을 한장씩 넘기는 느낌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 中에서


이별 시 모음에서 빼내어 읽어도 좋은 님의 침묵


<님의 침묵>은 이별 시 모음에 넣으면서도, 이별 시 모음에서 빼내어 읽어도 가치가 있다. 그 까닭은 그가 시인이면서, 조선불교유신론을 쓴 승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3.1운동의 선봉에 섰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시에서의 님은 부처님이기도 하고, 조국의 독립이기도 하다. 이것 역시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우는 것이지만 만해 기념관에서 그의 흔적을 더듬다보니, 머리로만 알던 것이 가슴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민족대표 33인 중에서 일제에 굴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기룬이라는 말을 현대어로 하면 '그리운'이다. 앞서 말했듯 만해 한용운이 그리워했던 것을 좆아가면 <님의 침묵>이 훨씬 입체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만해 기념관 한쪽에는 만해 한용운의 저서가 진열되어 있다.

세상 모든 그리움을 님이라고 불러보면 만해 기념관의 이 많은 그리워하는 문장들을 가리켜 이별 시 모음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룻배와 행인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이 구절을 읽다보면 안녕하신가영의 노래 구절이 생각난다. 오늘도 굿바이/ 시작한 적도 없이 또 굿바이

이별 시는 또 다른 이별 시 모음에 합류하며 슬픔을 승화시키는 힘이 있다. 


아름다운 보석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의 님처럼, 세상 모든 이별 시 모음의 님들은 침묵하고 있다. 화자는 반대로 님을 부르짖고 있다. 내 곁에 없는 그 님은 그 순간만이라도 내 곁에 있다.


체험 학습장


만해 기념관은 시화 족자 만들기, 부채만들기, 탁본체험같은 체험학습장 역할도 한다.

체험학습장을 찾는 아이와 함께 가볼만한 곳이다. 



초등 체험학습 견학문이나 기행문같은 방학숙제, 학교 과제로 딱일 듯. 만해기념관 옆에 있는 남한산성 행궁에도 체험학습 거리가 많으니까 둘을 엮으면 더욱 좋겠다.


님의 침묵 시낭송 감상 코너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 中에서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태백산맥의 소설가, 조정래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조정래 선생님은 본인이 한국 시 역사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구절이 두 개라고 한다. 하나는 김소월 시인의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이고, 또 하나는 만해 한용운 시인의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라고.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를 읽으면 일본과 싸우다 죽으면, 그 죽음이 또다른 독립가를 만들어낼거라는 민족의 유구함이 느껴진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죽음까지 민족혼에 불을 지피는 바탕이 된다니, 한편으로는 너무나 민족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조국 독립이 그 시대, 이땅 사람들의 가장 절실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떨어진 낙엽이, 다시 나무가 됩니다.


만해기념관 앞 은행나무 낙엽이 길을 노랗게 만들고 있었다.

노랑나비의 떼죽음 장면처럼 비장하게까지 느껴진다. 만해 한용운 시인의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됩니다."는 말을 이어보자면, "떨어진 낙엽이 다시 나무가 됩니다."로 받을 수 있을테지.

첩첩이 누운 은행잎들이 은행나무 뿌리에 거름으로 가닿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겨울은 지나가겠지. 그런 의미에서 세상 모든 이별 시 모음은 겨울이 다 지나갈 때까지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님이 침묵하는 동안 이 겨울은 지나갈 것이다. 봄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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