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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서울시립미술관 예술가의 런치박스 3번의 체험기

Dondekman 2017. 8. 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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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끼와 함께 나누는 예술

예술가의 런치박스 행사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주최하는 월별 행사다. 그 달 행사를 담당한 기획자가 기획한 어떤 퍼포먼스와 함께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소요시간은 대략 정오부터 13시까지, 1시간 동안.

글쎄, 예술과 밥이라, 예술은 밥이 안된다는 오래된 경구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걸 뒤집어 보면 밥은 그나름 예술이 되기도 한다. 예술이란 때로, 아름다움을 가지고 어떤 의미를 가리키는 일이 될테니까.

호기심이 생겨 나도 예술가의 런치박스에 몇 번 참가해보았다. 


비디오사운드 긱 by 이현우


이날 장소는 서울시립미술관 카페 아르떼.

점심메뉴는 김밥과 샐러드, 아메리카노 커피였다. 샐러드와 김밥는 온갖 재료로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음식, 오늘의 퍼포먼스 역시 일상 속의 소리들을 모으는 일이었다. 잡음들을 음악으로 만드는 일이랄까?


조화롭지 않은 것을 조화롭게 만드는 일


음식을 먹고 있는 와중에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처음에 마이크에 입을 연 여자분이 "뜻하지 않게, 동네분들을 만났어요." 띄엄띄엄 말했는데, 이게 서울시립미술관 스피커에서 후크송처럼 반복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게, 동네분들을 만났어요. 만났어요...



세상에 쓸 데 없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이 예술의 재료

사람들에게 제가끔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누구한테는 아무노래라도 좋으니 노래 한 소절만 불러달라고 하기도 하고..

나한테는 메크로놈에 맞춰 소리를 내달라는 이야길 하더라. 아, 쑥스럽게 ㅋㅋ 그냥 또르르 또르르 입소리 비트박스를 해줬다.

서울시립미술관 카페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소리, 흥얼거리는 소리가 뒤섞였다. 그리고 실내에 울려퍼지는 잡음같은 메아리들이 한데 섞여서 믹싱되었다. 글쎄, 듣다보니까 호러다큐같달까, 좀 무서웠다는... 사람들이 좀더 의욕적으로 했다면 더 재미있는 단체퍼포먼스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프로젝트 나비 by 최선


이날 서울시립미술관 행사에서 제공된 점심은 브리또, 그리고 멕시코식 쌀 음료다. 

브리또에는 멕시코의 특유의 향신료 때문에 향취가 듬뿍 느껴졌고, 쌀 음료 역시 멕시코 전통의 그것, 맛을 표현하자면 알코올 없는 막걸리같았다.



어떤 의도를 버린 자리에 펼쳐지는 날개

최선 작가는 본인이 보편적인 표현 방식이나 소재에 국한되지 않은 작업을 진행하는 작가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저 큰 종이에 펼쳐진 나비 날갯짓들은 모두 하나의 그림을 실크스크린으로 복사해 늘어놓은거다. 저거 만드는 것도 실습했는데, 지면상 생략, 그냥 판화같은 복사작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실크스크린의 문양이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것을 재현해보기로 했다.


도화지 위의 물감에 입바람 불기


이날 우리는 이 실크스크린을 직접 만들어 보았다. 

먼저 종이 위에 파란 물감을 떨어뜨린다. 그 다음에는 그냥 후, 후 불으라고 한다. 본인의 생명의 기운을 담아 입김을 불면서, 어떤 의도를 가지지 말고, 그냥 후, 후 불기만 하라고.

그래서 불었더니.



온 힘을 다해 질주하는 거미 한 마리

물감이 도화지 구석구석에 닿도록 힘껏 불었더니 저렇게 되었다. 거미가 미친 듯이 달려가는 그런 모양이다. 내 혼은 저런 모양인가보다. ㅋㅋ


두더지 놀이 by 박천강, 조남일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예술가의 런치박스 테마는 두더지 놀이.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관 한쪽을 세트장으로 만들어놓고 단열재 속에 구멍을 뚫어놓았다.



서울시립미술관 예술가의 런치박스 참여자들은 지급된 커피와 도시락을 들고 하나의 웅덩이에 자리를 잡았다.


함께이면서 홀로이고 싶다. 


딴 짓을 할 수 없이 집중만 해야 하는 학교, 회사는 효율적일까?

두더지 놀이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은 서로 함께 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떨어져 있고 싶어하는 이중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마치 수업 시간일수록 더욱 딴 짓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처럼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모든 발명품은 세상 모든 딴짓들의 산물이다. 이성적이고 바람직한 게 항상 바람직할까? 두더지굴은 그런 물음을 던지고 있다.


느슨한 공동체

사회자는 우리더러 각자의 굴 안에서 강의를 듣건 밥을 먹건, 딴짓을 하건 마음대로 해보라고 그랬다. 마음대로 하면서 딴짓의 본질과, 그 효용성을 경험해보라는 것이다. 

카페에 혼자 가는 사람들의 심리가 참견하기도, 참견받기도 싫어하지만 함께라는 의식을 가져가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인들이 좀 느슨한 공동체를 찾는 반증이라고 논했다. 그래서 이 '두더지 놀이'는 현대인들이 찾는 느슨한 공동체를 위한 하나의 지표이자, 실험이라고..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존중하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경험한 몇 번의 예술가의 런치박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성을 존중하고, 지향해야 하지만, 사람은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감성과 무의식을 의식적으로 배려해야 잘 살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나의 마음을 존중해야 나를 이해할 수 있고, 타인에게 스스럼 없이 악수를 건낼 수 있다. 몇 번의 점심식사와 예술 퍼포먼스를 통해 다양성의 존중이 곧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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