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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데크만의 베이스캠프
전주, 익산 근처 갈만한 곳 춘포역. by 111번 버스 본문
해찰하기 좋은 곳
목적지에는 갈만한 곳, 이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가는 길을 이어주는 장소에 보통 근처 갈만한 곳, 이라고 '근처'라는 말을 붙인다. 춘포역이 그런 '근처 갈만한 곳'이다. 소속은 익산시면서 거리는 삼례읍에 가까운, 그러나 삼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있다. 그러면서 또 교통은 좋아 27번 국도에 바로 닿아있고, 전주, 삼례, 익산을 연결하는 111번 버스가 10분에 한대씩 다닌다.
전주 근처 갈만한 곳은 많고 익산 근처 갈만한 곳도 많다. 그러나 전주와 익산 사이의 근처에서 일정의 쉼표를 찍고 싶다면 여길 들러보길 권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이라는, 묵은 것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춘포역
春浦驛, Chunpo Station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 건물
춘포역은 1914년에 문을 연, 한반도 최초의 역 건물이다. 하지만 좋은 의미에서 최초는 아니다. 일본이 이곳의 쌀을 긁어가기 위해 만든 역이니까. 1910년, 조선을 합병한 일본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쌀을 가져갈 작업에 착수했고, 군산항으로 곡식을 운반하는 와중에 이곳 춘포역을 중간기지로 삼았던 것이다.
대장역 → 춘포역
나 어렸을 때 주로 서울 외가댁을 갈 때 기차를 이용했었는데, 이때 우리가 탄 통일호 기차가 한 역, 한 역, 가면서 나는 다음에는 무슨 역이야? 다음에는 무슨 역이야? 연거푸 물어봤고, 엄마는 내가 묻는 말에 끝말잇기처럼 다음 역을 댔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역 이름이 '대장'이다. 대장? 짱이라고?
대장(大場)은 넓은 마당, 그러니까 들판이라는 뜻이다. 일본이 붙인 이름으로, 이름에서부터 이제부터 너네는 우리의 곡식창고야, 하는 기운이 느껴진다. 니가 대장大將이다. 하는 어감하고 작명 의도가 그리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배 없는 포구, 기차 없는 역
1996년에 이곳은 대장에서 다시 옛 지명인 춘포로 돌아왔다. 익산시 춘포면이다. 춘포春浦, 봄 나루터라니 대장보다 열배는 아름답다. 춘포역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이곳에는 2007년부터 기차가 끊겼다. 2011년에는 전라선 전철화 작업으로 아예 선로가 사라진 상태다.
높은 교각 위에서 달리는 기차를 올려다보고 있는 춘포역을 보니 봄 나루터라는 이름이 더욱 잘 어울린다. 애초에 망경강을 지나는 배들의 포구라는 뜻이었으므로, 배가 다니지 않는 지금도 춘포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기차가 다니지 않는 지금도 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추억이 있듯, 그 지역에게도 추억이 있다. 그것이 지명이다.
이곳은 지금 간이역박물관이 있다. 내가 이곳에 갔던 오후 2시쯤, 마침 문이 열리더라. 춘포역의 최중호 명예역장님이다.
역무원 모자를 쓰신 최중호 역장님. 이곳을 지켜 관리하시며, 춘포역 안에 갖가지 소품을 놓아두셨다. 현재, 역 대합실이었던 곳과 역무원실이었던 곳은 간이역박물관과 카페테리아로 꾸며져 있다.
영원히 멈춰있을 열차번호, 기차요금
간이역 박물관
간이역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는 이곳. 지금도 전주와 익산 사이에서 근처 갈만한 곳이 되어주는 여행코스의 간이역이다.
학창시절에 점심, 저녁시간이 오전, 오후, 밤을 나누는 역이었다면 수업시간 사이의 10분 쉬는 시간은 간이역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정기휴가가 역이었다면 짧게 나오는 외박은 간이역이었다. 간이역은 없어도 되지만, 있어야 살 맛이 나는 공간이다. 어쩌면 여행코스의 간이역이라고 부르기 전에, 여행 자체가 삶의 간이역이 아닌가, 싶다.
춘포역의 추억
헌 의자나 책상으로 만든 듯한 말이다. 말의 속눈썹이 예쁘다.
나무로 된 말. 목마木馬는 기차를 뜻하는 철마鐵馬를 생각하게 한다. 기차였던 기차는 이제는 문화재로 남은, 역이었던 역인 춘포역이라고, 달리 불러도 될 것 같다. 지금은 아니었지만 ~였던 기억. 그러고보면 추억이란 지금의 삶을 더욱 생각하게 만드는 기억인 것이다.
춘포역 앞에 철로가 있었을 때, 나는 대학생이었고 친구들과 이곳에 소풍 와서 철로 위에 100원짜리 동전을 놓고 갔었다. 당시 하루에 몇 번 실험용 기차가 오갔고, 춘포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고 오니, 철로 위에 있던 100원짜리는 납작하고 길어져 있었다. 그걸 갓 만든 엿을 받은 것처럼 좋아했던 생각이 나네.
춘포역 앞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포스터 속 처럼 철도가 놓여 있었다.
간이역 박물관 벽에는 이밖에 춘포역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과 글들이 있다.
느린 우체통
역 앞에는 느린 우체통과 엽서가 있어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되어있다. 보내는 함도 있고, 받는 함도 있으니까 춘포역에 편지를 보내놓고, 나중에 들러서 편지를 찾아읽는 재미가 있겠다. 이곳에서 편지를 써서 자신의 집에 보내는 것도 재미있겠고. 뭐, 깜짝 놀래키는 행사같은 거 할 때 좋지 않을까? XX야 사랑해, 써진 엽서를 미리 춘포역에 보내놓고, 우연히 이곳에 들리는 식으로 하면.. ㅋㅋ
춘포역에서 바라보는 춘포면
춘포역 앞에는 우람하면서 우아한 침엽수가 있어 역을 가리기도 하고, 역을 돋보이게도 한다. 역 앞 길을 걸어가면 춘포면사무소가 있는데, 간이역 박물관 안에서 화장실이 필요하면 저곳을 이용하면 좋다.
111번 버스
전주와 익산을 이어주는 버스로 10분마다 한대씩 다니는 노선이다. 종점은 삼례터미널이며, 삼례터미널에서 또다른 111번을 타고 전주나 익산으로 가면 된다. 전주와 익산 사이를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이 이용하고, 익산의 원광대학교, 삼례의 우석대학교, 전주의 전북대학교를 모두 거치므로 전북의 대학생들에게 더할나위없이 유용한 노선이다.
전주나 익산 어디서든 111번 버스만 타고 가면 춘포역을 만날 수 있다. 춘포 정류장에서 내리면 그곳이 바로 춘포역 앞이다. 대중교통까지 완벽하네. 정말 차 가진 사람에게나 뚜벅이에게나 춘포역은 전주, 익산 근처 갈만한 곳 1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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