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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관광, 유리잔도를 걷다. 무한도전 정형돈이 느꼈던 공포 본문

해외여행/중국(장사-장가계)

장가계관광, 유리잔도를 걷다. 무한도전 정형돈이 느꼈던 공포

Dondekman 2017. 4. 17.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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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눈 앞에서 위기를 겪게 되면, 다음엔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이 쉽게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기 때문이다. 거창한 것을 들먹일 것 없다. 옥상 난간에만 서도 그런 생각이 드니까. 그리고 이곳에서도 그랬다. 


장가계 유리잔도

長家界 玻璃栈道, Zhangjiajie Glass Bottom Cliffside Path


우리나라에서 장가계관광이 유명해진건, 무한도전 방송을 탔던 탓이 크다. 그 중 특히 부각되었던 장소가 유리잔도라고 불리는 곳이다. 낭떨어지길로 유리를 깔아놓자 웬만한 남자들도 벌벌 떨었고,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정형돈은 진땀을 흘리며 거길 못 지나가더라. 


덩치 넉넉한 정형돈이 산길 하나를 못 가고 빌빌 기고 있으니까, 안방에서 보던 마나님들이 특히 재미있어라, 했나보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많은 곳 중에 장가계관광을 오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엄마가 무한도전과 정형돈을 봐서였네. 



천문산 케이블카 종점 정류장에서부터 1000미터 낭떨어지를 따라 나 있는 길을 귀곡잔도라고 부른다. 1000미터라니, 천길 낭떨어지라는 말과 어울린다. 유리잔도는 천문산 서쪽 지역, 귀곡잔도의 바닥을 유리재질로 해 놓은 길을 말한다. 

갑자기 붉은버선이 놓여있는 바구니가 나타났다. 유리잔도에는 이거 신고 가야 한다는이야기. 수많은 사람들의 신발로 짓이겨진 버선을 조물딱거리면서 신어야 하나? 그런 생각에 그냥 착용 안하고 가고 싶었다.


금방이라도 유리가 와장창, 깨질 것 같다.


올 것이 왔다. 난간도 바닥도 모두 유리도 되어있는 유리잔도, 차마 아래를 똑바로 보면서 걷지는 못하겠고, 그런 느낌이 든다. 유리길을 오래 걸으면 걸을수록 유리가 견디다 못해 와장창 깨져버릴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유리 한 장과 그 다음 유리 한 장은 완전 개별적인 것인데 모두가 연결된 살얼음판같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 모든걸 다 의인화하고 싶어하고, 원인과 결과로 연결된 것으로 엮어 생각하고 싶어한다.

나는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세탁기가 건조모드에서 윙윙, 거세게 돌아갈 때면 저 세탁기가 저걸 반복할수록 터져버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자꾸만 하게되더라. 그래서 세탁기를 돌려놓고, 밖에 나가서 일을 하든지, 하는 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위태로운 상황이면 아슬아슬하느니 그걸 다 초기화하고 싶은 생각말이다. 싸움 한 번 해보지 않은 소년이 무섭다 못해 힘센 아이에게 달려들어 팔뚝을 깨무는 행동처럼, '막 나가고' 싶은 것이다. 가령 이 유리판 위에서 팡팡 모둠발로 뛰면서 가는 것이라든지...



내 옆에서 걷는 엄마는 유리는 커녕 최대한 낭떠러지 안쪽으로 찰싹 달라붙어 가고 계신다. 내가 동영상촬영버튼을 누른채 엄마에게 건낸 디카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 줄도 모르겠다. 엄마는 심각한 표정으로 최대한 유리쪽을 안보면서 가시더라. 그러다 간헐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름을 부르시더라. 내가 일행으로부터 떨어질까봐 간헐적으로 둘러보면서 나를 부르고.


귀곡잔도를 걸으며 바라보는 기암괴석들은 그렇지 않아도 다시없는 풍경인데, 이렇게 투명한 길을 걸으며 보니까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래서 장가계관광이라면 "유리길 밟으러 가는" 뭐 그런 것인가보다. 우리 모두 한번씩 무한도전 장가계관광 멤버들의 마음이 되어보고, 정형돈도 되어 보았다. ㅋㅋ



유리잔도 난간 저편으로 손을 내밀어 낭떠러지 저쪽을 찍었다. 예의 얼음벚꽃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서리꽃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듯. 녹을 때를 기다리는 얼음꽃, 그것을 삶이라고 부르고 나니까 쓸쓸해진다.

엄마가 내가 아찔아찔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자 막 소리를 지르며 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난간 안쪽에 있고, 난간 밖으로 내민 카메라는 내 목에 매달려 있는데 말이다. 엄마의 공포는 아까 말했던, 눈앞의 아찔함이 일어날 리 없는 일에 대한 상상을 증폭시키는 뭐, 그런 것일테지. 엄마는 옛날부터 내가 어떻게 될까봐 무서워했다. 학교에서 내가 조금 늦게 끝나서 집으로 가는 날이면, 항상 걱정스러운 얼굴로 마중나오는 엄마와 마주치곤 했다. 



공포라는 파도를 타고 노는 서퍼처럼 유리잔도를 다 걸었다. 절벽 위에 있는 철탑이 초라할 정도로 거대한 절벽 산을 보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몇 센치 안되는 난간 이쪽 저쪽이 삶과 죽음이다. 귀곡잔도, 유리잔도를 걷는 기분은 그렇다. 

지인이 지금 뭐하냐고 그래서 천문산 유리잔도를 소재로 장가계관광 포스팅하고 있다고 그랬다. 그리고 그 기분은 아름답고, 끔찍하다고 그랬다. 아름답고 끔찍한 거? 그게 뭔데?

음... 1000층짜리 빌딩이 있는데, 딱 반절이 무너져 있어. 그리고 그 무너진 단면에 유리로 된 길을 설치해 놓은거야, 그리고 거길 지나가래. 그랬다. 그렇다. 끔찍한 이유는 끔찍하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사랑도, 이별도, 때로 너무 끔찍해서 아름답다. 끔찍하게 아름다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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