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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데크만의 베이스캠프
천문산사 미륵불상은 왜 고도비만일까? 본문
이야기 끝에 또다른 여행이 있다.
천문산 귀곡잔도 종점인 소천문(小天門) 휴게소를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천문산사(天門山寺)에 도착했다. 관귀곡동(观鬼谷洞), 패합(捭闔), 구아동(求兒洞)을 지나는데 10분 정도 걸린 셈이다. 여기서 리프트종점인 앵두만(櫻桃湾)으로 가기 전에 40분 정도 자유시간을 가졌다. 부모님이 앉아서 쉬는동안 나는 천문산의 대표적 유적지 천문사 안으로 들어갔다.
천문산 천문사
天門寺, Tianmenshan Temple
줄여서 천문사라고 부르는 천문산사. 높은 산 위에 있는 사찰답지 않게 크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큰 절들과 맞먹는 크기다. 천문사는 중국 명나라 때 세워졌다고 하는데, 무너졌다가 청나라대에 다시 복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나라와 시대의 궤적을 같이하는 조선시대 초반 정도에 세워져, 조선후기에 다시 지은 절이라고 보면 되겠다.
천문사 천왕전의 뚱뚱한 미륵불상
천왕산사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천왕전에 있는 미륵불상이다. 중국의 미륵불상은 인도나 우리나라와 전혀 다르게 고도비만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불상들도 살집이 넉넉하긴 하다. 그래도 이정도는 아닌데, 뚱뚱함의 정도가 이건 좀 너무 나갔다, 하는 생각이 든다. 풍요의 신을 형상화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비대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미륵불상만 고도비만이다. 천왕산 천왕사의 석가모니 불상만 해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살집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이 세상의 부처님인 석가모니 불상은 현실적으로 만들어놓고, 미래에 올 부처님인 미륵 불상은 풍요의 소망을 담아 빚은 것일까?
왜 중국 미륵불상만 고도비만일까?
맨 오른쪽, 앉아있는 부처님이 천왕산사의 석가모니 불상이다. 그리고 맨 왼쪽은 인도의 미륵불상이다. 가운데는 우리나라 봉은사에 있는 미륵불상이다.
서로 다른 인도, 한국, 중국의 불상
인도의 불상과 우리나라 불상, 중국 불상은 그 살집에 있어서 묘한 차이를 보인다. 인도의 옛 석가모니불상은 거의 피골이 상접한 형태로 되어있으며, 미륵불상은 좀 야윈모습이긴 하지만 그런데로 살이 있다.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석가모니불상과 미륵불상이 모두 살집이 있다. 중국의 경우는 석가모니불상은 평범한 체형이고, 미륵불상은 언급한데로 고도비만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도의 깡마른 불상이 신라에 처음 들어올 때, 복을 기원하기 좋은 신앙의 대상으로 좀 풍요로워보이는 체형을 가지게 되었다는데 중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
중국의 미륵불상은 실제 한 승려를 모델로 했다.
서기 900년 경, 절강성 봉화에 계차(契此)라는 아주 뚱뚱한 스님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뚱뚱했지만 특히 뱃살이 엄청났던 모양이다. 계차스님은 그의 거대한 배를 이끌고 대나무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아무대서나 먹고 자고 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날씨나 사람의 길흉을 하는 신통력이 있었으며, 하는 행동이 이상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뭐가 이상했는지는 모르겠다. 원래 진짜로 이상한 것은 뭐가 이상한지 딱 잡아 말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그가 그랬던 듯 하다. 어쨌든 그래서 늘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아이들을 몰고 다녔는데, 그는 봉화의 악림사(岳林寺)에서 입적했다. 그가 죽을 때 한 말이 이렇다.
彌勒眞彌勒 / 미륵 가운데 진정한 미륵은
化身千百億 / 천만년 변화신이 되었다.
時時示時人 / 사람들 앞에 때때로 나타나도
時人自不識 / 사람들은 스스로 이를 알지 못한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그를 비로소 미륵불의 화신으로 여겨 사찰의 천왕전에 그의 모양을 본따 미륵불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부처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 속에 있다.
나는 출가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천문산 천문사를 나서는 길, 절 계시판에 중국어로 써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출가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정도로 읽히는데 사람들과 어울리고, 봉사활동하는 사진들로 봐서는 여기서 말하는 출가는 세상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진정한 수행을 발견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어쩌면 저 고도비만 미륵불 아저씨가 주는 메시지도 비슷한 뜻을 담고 있지 않나, 싶다.
중국이 일개 배불뚝이 승려를 본따 미륵불상을 만들었다는 것은, 미래의 희망이라는 건 엄청난 무엇인가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어쩌면 비루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천문산사의 배불뚝이 부처님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미련한 사람들아, 미륵을 기다리지 마라. 너희가 기다리는 미륵은 네 주변을 둘러보면 항상 있느니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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