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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무진버스 타고 장가계여행, "토가족 여자들은 울어야 사랑받는다." 본문

해외여행/중국(장사-장가계)

리무진버스 타고 장가계여행, "토가족 여자들은 울어야 사랑받는다."

Dondekman 2017. 4. 1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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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활이라면 활시위를 당기는 건 기다림.

오는 차편을 기다린다. 마침내 온 차를 타고 창밖을 보며 목적지까지 기다린다. 좀 불편하고 지루하면, 불편한데로, 지루한데로 참는 것도 여행의 일이다. 배고픔 뒤의 음식이 더 달다. 기다림 뒤의 풍경이 더 아름답다.


2층 리무진버스


우리가 탄 장가계 관광버스는 2층 리무진 버스였다. 보통 버스보다 좌석까지의 높이가 두세배는 더 높이 솟아있고, 운전석은 탑승객 좌석보다 좀 아래로 내려와있다. 가이드말로는 예전 장가계관광에 비하면 3단 업그레이드를 한 버스란다. 그냥 버스→리무진 버스→2층 리무진 버스라는데, 10년 전만 해도 장가계 여름여행에 에어컨 없는 버스가 배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버스를 "가야콘 버스"라고 불렀다는데, 가야콘은 가야 나오는 에어컨이라고.



앞쪽 문보다 뒷쪽의 문은 더 가파르다. 여긴 조심을 소심小心이라고 표현하는 듯. 허공을 딛지 않도록 조심하란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주의하라는 사진을 찍다가 발을 헛딛었다. 1미터를 그대로 뛰어내려 순식간에 마지막 문턱에 가 있더라. 


조망하기 좋은 2층 리무진버스

2층 리무진버스는 옆에 버스가 지나가고 있을 때 그 버스의 창문 아랫쪽을 엿볼 수 있을 정도로 높다.



장가계 리무진버스 좌석에는 복도쪽마다 옷을 걸라고 만들어놓은 뭉치가 튀어나와있다. 저요! 손을 들듯 주먹 하나가 튀어나와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귀엽다. 이게 어울리는게 여행 가이드가 우리를 2학년 1반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인원이 총 21명이었기 때문인데, 패키지여행이라는 게 가이드를 열심히 쫓아다녀야 하는, 일종의 수학여행 비슷한 점도 있어 이 2학년 1반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가이드가 버스 입구쪽에 서서 여행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으면, 이 주먹 옷걸이가 더 저요! 질문하려고 손 들고 있는 모습같다.   


버스로 4시간을 달려 장사→장가계  


4시간여를 버스를 타고 장가계까지 오면서 휴게소는 딱 한 번 들렀다. 일단 고속도로에 휴게소 자체가 우리나라처럼 많지 않다고 가이드는 화장실을 원하면 적어도 30분 전에는 말해달라고 했다.  

중국 사람들한테 버스타고 4시간이란 우리나라에서 30분 버스타고 어딜 가는 것과 비슷한 체감이란다. 중국에서 먼 거리는 일주일동안 기차를 타야 할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나만해도 북경-중경 사이를 기차타고 36시간을 달렸었지. 



공측公厠, 휴게소의 공중화장실이다.


장가계시市가 가까워온다.


강을 넘고.



유채꽃 평야를 가로질러



산이 가까워 온다. 장가계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장사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비가 언제 올 지 모르는 우중충한 날씨였다가 장가계로 올수록 날이 개었다. 장가계의 최고봉 천문산을 조망하는 케이블카를 타야 할 우리 입장에서는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장가계에 가까이 갈수록 리무진버스 차창으로 산이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냈고, 동시에 간간히 묘지들이 보인다. 가이드는 등소평의 화장 정책 이후로 한족은 법적으로 모두 장례를 화장으로 치루게 되었으므로, 저 무덤은 토장土葬 매장문화가 있는 소수민족의 것이라 지적했다. 토가족(土家族투쟈족)에 대한 이야기다.  

투가어라는 고유의 언어와 함께 독특한 문화를 지닌 토가족은 현재 중국에 약 천만이 거주하며, 그 33퍼센트가 호남성(湖南省후난성) 서북부 산지, 즉 장가계 지역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장가계 여행에서 토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우리의 장가계여행 가이드는 이어 토가족의 풍습 이야기를 꺼냈다. 잘 울어야 결혼을 잘 할 수 있는 토가족 여자들의 재미있는 풍습 말이다. 


울어야 사랑받는 토가족 여자들


사진은 토가족의 대표미인이라 불리는 영화배우 허청许晴이다. 토가족의 생김새는 대체로 몸집이 작고, 토土자가 붙은 민족 이름답게 얼굴이 흙빛을 띄고 있다. 얼굴이 약간 가로로 퍼진 듯한 인상을 준다. 그들이 쓰는 투가어가 미얀마와 베트남 언어에 가깝듯 외모도 그런 인상을 풍긴다.


토가족 여자에게 발등을 밟히고, 돈내고 풀려난 한국인 여행객

토가족은 연애와 결혼에 있어 무척 자유로우면서, 여성이 주도권을 쥔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국 장가계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 중에 장가계여행을 하다 토가족 여자한테 발등을 밟혔는데, 15만원을 물어주고서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토가족의 청혼은 매년 3월 19일에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찾는 대다수 국가의 문화와 달리 토가족은 여자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남자를 찾아가는 식이다. 토가족 여자가 자신이 반한 남자에게 가서 발등을 3번 찍으면, 남자가 응대하여 혼인이 이루어진다. 

이때 남자가 거절의 답변을 하려면 여자의 발 뒤꿈치를 3번 차면 된다. 그러나 토가족 세계에서 여자의 자존심을 뭉갠 댓가는 혹독하다. 프로포즈 거절의 죄목으로 남자는 여자집 머슴살이를 무려 3년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자 역시 그 3년 동안 결혼을 할 수가 없다는 핸디캡이 있긴 하지만,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머슴살이 대신에 머슴 노릇을 할 수 있는 소 한마리를 주면 되긴 하는데, 이게 한두푼이 아니니 오히려 더 무서울 수 있다. 물론 소의 가치가 옛날과 지금이 달라 현재 시세로 소 한마리는 중국돈으로 1천 위안, 그러니까 한국돈으로는 약 15만원 정도 한다고 한다. 옛날에 비하면 많이 저렴해진 듯. 어쨌든 그 한국인은 졸지에 여자의 자존심을 뭉갠 위인으로 간주되어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비용을 치른 셈이다.

여자의 프로포즈를 거절하면 소 한마리라고? 매력없는 여자를 부유하게 만들려는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일까?


열심히 울어야 대접받는 며느리가 된다.

토가족 사회에서는 여자들에게 울음을 가르치는 과외 선생이 있다. 그만큼 결혼을 앞둔 토가족 여자들에게 울음은 중요하다. 보다 더 소리높여, 보다 더 애절하게 울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울음의 길이 또한 길어야 한다. 

그 울음은 노래의 형식을 띈다. 토가족은 의사소통을 노래로 하는 민족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연애행사거나 곡가(哭嫁)라 불리는 이 혼인 울음에도 곡조를 붙여서 가사를 전달해야 하는데, 이 곡가(哭嫁)의 내용이란 여성으로서의 올바른 처신에 대한 이야기거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부모님을 남기고 시집가야 하는 슬픔, 그리고 남은 가족들에게 부모의 노후를 부탁하는 당부가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여자의 프로포즈를 남자가 받아들여, 신랑될 사람으로부터 혼인날짜를 받으면, 예비신부는 결혼 보름 전부터 거의 외출하지 않고, 울기 시작한다. 울고 울고, 또 운다. 아예 멍석을 깔고 우는 민족답게, 신부측에서는 대부분 신부가 울러 들어갈(?) 움막을 짓고, 테이블 위에 찻잔을 놓아둔다. 찻잔은 10개로 1개는 신부몫, 그리고 9개는 이 차모임에 초정될 9명의 신부와 친한 여자들의 것이다. 그 10총사는 보름동안 곡가(哭嫁)를 읊는다. 형식은 신부가 노래하면 신부의 엄마부터 신부와 가까운 차례대로 답곡을 부르는 방식이 된다.

토가족 여자들의 곡가(哭嫁)는 토가족 사회에서 며느리가 가져야 할 교양의 척도다. 하긴 울음 하나에 작사, 작곡, 마음 씀씀이가 다 녹아있으니, 인간의 종합적인 면이 단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곡가(哭嫁)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토가족의 왕노릇을 했던 토사왕에게서 도망쳐 나오기 위한 설이 유력하다. 토가족은 중세유럽의 장원사회가 그렇듯이 결혼하기 전, 그들의 영주인 토사왕과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들의 울음은 토사왕으로 하여금 여자생각을 뚝 떨어지게 만들 정도로 이상한 얼굴이 되는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뭐, 궂이 눈이 퉁퉁 부어 이상해진 얼굴이 아니더라도, 여자의 울음에 이기는 남자가 그리 많지 않기는 할 것 같다.


장가계市 도착


고층빌딩이 즐비한 장사에 비해 확실히 시골동네다. 가이드말로는 중국의 장사지방이 현재 한국 수준이라 치면, 장가계지방은 한국의 6~70년대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중국의 영어 이름인 차이나China로 중국의 내부사정을 빗대자면, 말 그대로 차이가 많이 나서 "차이나"라는 이야기도 해주더라.


장가계의 한식당


천문산 케이블카를 타러 가기 전 장가계에 있는 한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한국인이 장가계 관광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말 답게 장가계에는 한국어 간판을 단 한국식당이 많다. 리무진버스를 바로 앞에 세우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삼천리 한국요리"간판의 삼천리가 이렇게 작아보일 줄이야. 여긴 만리장성의 만리, 정도는 되어야 있어보이는 중국이다.



중국에는 물티슈 문화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가게 앞에 세면대가 있다. 중국, 하면 불결하다는 인식을 타개하려는 노력인 듯도 보인다.



중국 특유의 원판을 돌려먹는 방식이다. 글쎄, 한식이라곤 하는데 무늬만 한식인 느낌? 맛은 보장 못하지만 배부르게는 드실 수 있을 거라는 가이드분의 표현이 적확하다.

장가계여행을 하면서 된장, 고추장 등으로 조미된 한국음식에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냥 삼겹살, 오리고기 등 조미가 덜 된 것은 맛이 좋은 편이다. 상추같은 채소류나 과일들도 추천한다.



옆에 앉은 분이 보온병에 담긴 따뜻한 차에 믹스커피를 풀어서 마시는 걸 보고, 우리 엄마도 그렇게 마신다. 이미 식후라 물이 많이 식어서 새로 덥힌 차를 또 달래서 타서 드시더라.

밥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우리의 리무진버스 앞에 과일장수 아주머니가 수레를 끌고 오셨다. 장가계에서 리무진버스가 세워진 곳을 골라 이동하는 장사전략인 듯. 그나저나 아주머니 외모가, 혹시 토가족? 나는 아직 토가족과 또다른 중국의 소수민족인 묘족도 잘 구분하지 못하지만, 앞서 토가족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저 아주머니도 토가족으로 보인다.

결혼하셨습니까? 하셨어도, 안하셨어도, 그간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장가계 가는길, 장가계 한식당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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