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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벽을 말하다 안양시 창박골 버스종점 새단장, "수리산 병목안 마을 이야기" 본문

국내여행/경기

벽화, 벽을 말하다 안양시 창박골 버스종점 새단장, "수리산 병목안 마을 이야기"

Dondekman 2017. 7. 1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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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벽을 말하다.

순전히 실용적인 시설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 벽화는 신기하다. 그냥 벽이었는데 어떤 의미를 닮은 그림이 되어, 마음 속에 그것을 담을 수 있다니. 이날 안양9동의 창박골 버스종점에 간 건 버스를 잘 못 타서였다. 왜 있잖은가, 잘못 탄 버스를 타고, 그냥 종점까지 가보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데 이런 여행의 특징이 허무하다는 거. 그냥 가고 싶어서 갔는데, 그냥 버스종점이었을 뿐이었다는 거. 하지만 이날은 적어도 벽화를 보고 왔다. 벽화는 벽이 가진 혀다. 벽화를 보고 있으면 벽이 말을 한다.


안양시 창박골 버스종점 벽화


산뜻하네.

창박골 버스종점 벽화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1084-3번지 구역에 있다. 창박골 버스종점이 좀 높은 지대에 있는데, 이곳을 지탱하는 축대에 벽화를 그려놓았군. 색상이 그 왜, 실제로는 없고, 물감상에만 존재하는 파스텔톤 있잖은가, 녹색도 아니고, 파란색도 아닌, 녹색과 파란색이 하늘색과 만나기 직전에 진행을 멈춘 듯한 색깔 말이다. 버스 색상하고 잘 어울린다. 애초에 버스의 색깔을 모델로 한 듯 하다. 

오합지졸벽화봉사단 수주로 제작된 이 벽화는 2017년 6월 말에 완성되었다. 병목안 마을 이야기를 테마로 하고 있는 벽화다. 


1960년대 병목안의 모습


기찻길 다니는 바로 옆에 놓인 초가집. 이 철길은 안양역을 거쳐 지금의 안양역 광장 인근의 골목을 따라 온 철도였다. 병목안에는 일제시대부터 채석장이 있었고, 거기서 채취한 돌을 실어나르던 철길이었다. 

이걸 보고 있으니까 군산 경암동철길마을[링크]가 생각난다.


피난민 마을에서 자연 친화 도시로


60~70년대 병목안 마을은 수리산 산기슭의 달동네다. 병목안이라는 이름 자체가 수리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을의 좁은 입구가 병의 목과 닮았다고 해서 병목안이니까. 뭐 옛날같으면 외부의 침입이 쉽지 않은 곳이었던 거다.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 때도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 많았고, 한국전쟁때도 강원도 평강에서 피난 온 사람들을 수암천변에 수용시켰고,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를 피난민촌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율목주공아파트 자리가 바로 그곳.

 


벽화에 있는 삼덕제지 공장의 과거 사진. 낙후되어 있던 병목안 마을은 70년대에 삼덕제지 등 안양 공업단지의 발전으로 인해 발전한다. 80년대까지 일제시대때의 채석장 사업으로 근근히 먹고 살던 이곳은, 지금은 병목안의 상징과 같았던 채석장 자리가 시민공원으로 바뀌며 살기좋은 곳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병목안 시민공원

2004년부터 산림과 정원을 조성해 문을 연 병목안 시민공원은 벽에 물을 흐르게 만든 벽천과 인공폭포가 돋보인다. 무엇보다 병목안 마을의 형태, 그 자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수리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한편 병목안 시민공원 한켠에는 채석장 화물차가 전시되어 있다. 이곳의 과거를 알 수 있는 전시물이다.


남녀노소의 병목안 마을 이야기를 담은 벽화


창박골 버스종점에 그려진 벽화는 초등학생부터 중, 고등학생, 사회단체회원 등 130여명이 그린 것을 배열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벽화를 보고 있으면 가족 솜씨자랑 전시회같다.



수리산의 수암봉은 395m의 나즈막한 봉우리다. 그런데 벽화 속의 수암봉은 태양과 완전 가까이 태양과 수암봉 둘 뿐이다. 

저걸 그린 아이는 자신의 작은 걸음으로 느낀 수암봉이 얼마나 어마어마했을까? 싶다. 아이의 마음 속 수암봉은 395미터가 아니라 1395미터 정도 되었을 듯.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네, 저도 벽화를 그린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어서 더 빛나는 것들


날씨가 좋아도, 날씨가 안좋아도 가고 싶은 병목안 ㅋㅋ 날씨가 안좋을 때는 우산을 아예 모자처럼 눌러쓰고 있네. ㅋ



병목안이라는 이름처럼 콜라병 하나가 나온다. 콜라병 속으로 하트 하나가 들어와 떨어지는 중. 그래, 이렇게 생긴 곳은 여기밖에 없지. 우린 우리 자신일 때 더욱 빛나, 이거 쇼미더머니6에 나온 래퍼 넙치의 랩 가사[링크]다.



그대앞에서는 이쁘게도 방긋 웃을 수 있었던, 지독한 나의 자존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렇게 써놓고 제목은 나이롱 박수인데, 아니다. 적어도 나는 당신에게 나이롱 박수가 아닌 진짜 박수를 보낸다.

창박골 버스종점부터 벽화는 80여미터 동안 이어져 있었다. 그림을 다 보고 나니 현대아파트 방향 정류장이 나오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향해 벽을 세우는 것이 삶이라면

길은 길이면서 벽을 만든다. 도시에서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그렇다. 길을 만들수록 벽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 벽에, 적어도 내가 사람이며, 사람과 만나 살았음을 알리는 벽화 정도는 그려야 하지 않을까? 

제 벽에 막혀 다가오지 못한 당신께,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슬프고, 무서웠답니다. 이제 당신과 제게 위로를 빌며 이 벽화를 남깁니다. 아무쪼록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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