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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데이트, 전남 광주여행에서 가볼만한 518민주광장 본문

국내여행/전남

저녁 데이트, 전남 광주여행에서 가볼만한 518민주광장

Dondekman 2017. 6. 2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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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장소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건 여행자의 몫.

이곳은 평범한 광장이다. 하지만 몇십년 전의 일을 생각하면 결코 평범한 광장이 아니다. 평범한 광장과 그렇지 않은 광장을 나누는 것은 여행자의 생각이다. 그렇다. 여행 장소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건 온전히 여행자의 몫이다.

시내버스조차 518번을 달고 운행하는 곳. 이곳은 518민주광장이다. 


무등산이 보이는 518민주광장


무등산이 보인다. 무등산에서는 해질녘 풍경이 아름답다. 저녁 데이트 코스로 좋은 전망대 카페[링크]가 생각난다.

무등산도 그렇지만, 518민주광장 역시 전남 광주의 가볼만한 곳에서 빠지지 않는다. 둘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광주의 상징이다. 

나는 저녁 데이트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고, 평화롭게 지는 해를 보고 있었다. 10대, 20대 들이 자전거 앞바퀴를 들었다 놨다 묘기를 부리며 놀고 있었고, 광장에서 맞는 전남 광주여행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40여년에는 달랐다.


밤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12시

거리는 한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고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다

밤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버렸다


<김남주-학살1>中에서


무등산에는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직 걷히질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을 쉬이 잃어버리는 세상에게 말이라도 건네듯이.


광주 아시아 문화센터


저녁 데이트를 하기로 한 지인이 알려주기를 이곳 금남로1가에 구 전남도청 건물이 잔존해있다고 했다. 그래서 518민주광장을 한바퀴 돌았는데, 새로 지은 아시아문화센터가 눈에 띈다. 아시아문화전당이라고도 불리더라. 5조원을 웃도는 예산을 들여 2014년에 완공했는데, 문을 연건 2015년. 그러니까 이 건물이 노무현 정부의 업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늦게 문을 열었다는 말이 많다. 

곡선미가 돋보이는 공간을 한 바퀴 돌았다. 이곳은 지하철역인 문화전당역과 연결되어 있다. 문화전당역은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의 실제 배경이 되는 남광주역이 있던 자리다. 지금은 시의 배경이 나주의 남평역[링크예정]이라고 잘 못 알려진 상황.



아시아문화센터의 일부처럼 있어서 전시관 한 채 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마치 옛날 학교건물에 덧대지은 듯한 외관이다. 첨단 디자인의 아시아문화센터와 연결되어 있으면서, 왜 이런 건물을 연결시켜놓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혹 저것이 구 전남도청 청사일까? 하는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래서 건물을 앞에서 보니


구 전남도청사


고등학생은 돌아가라!

이런모습, 이곳이 바로 5.18의 상징물인 구 전남도청 청사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시민군이 주둔한 전남도청으로 진입한다. 시민군들은 그때 고등학생들은 돌아가라고 했다고 한다. 본인들은 이곳에서 사살당할 것이며, 살아남는다 해도 처형당할 것이지만, 고등학생들은 돌아가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그렇게 여자들과 어린 학생들은 돌려보낸 채 시민군은 계엄군과 최후의 결전을 펼친다.



전남 광주여행에서 중심적인 광주시내. 저녁 데이트 거리로 금남로1가에는 항상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그 금남로1가에 518 민주광장은 수십년 된 한을 품고 있다. 518민주광장은 96년부터 명명된 이름이라고 한다.

구 전남도청사 맞은편에는 518의 상징물 중 하나인 시계탑이 있다. 5.18민주광장을 다 조망하며 시민들의 학살이 일어날 때도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시계탑.


518광장 시계탑


시분초를 가리키던 시계탑이 보다 거시적인 역사의 시계바늘이 되었다.



"시계탑은 알고 있다"라고 하는 신문기사가 나간 1980년의 어느날, 전두환 정권은 시계탑을 이 자리에서 옮겼다. 518민주광장의 시계탑은 2013년도까지 광주 농성공원에 있다가 2015년에서야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상무관


상처의 전당

사진 왼쪽 기와지붕의 전각같은 곳이 종각이다. 시계탑 옆으로 보이는 종각에는 민주의 종이 매달려 있다. 그 오른편에 녹색 지붕의 건물이 바로 상무관이다. 

상무관은 5월 27일 계엄군이 도청을 점거함으로 시민군의 항거가 막을 내리자 희생자들을 임시로 보관했던 장소라고 한다. 장례의식 없이 청소차를 동원해 시신을 운반했다고 한다. 이에 유족들을 비롯한 광주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진다. 

이래저래 한국사회는 광주시 전체를 폭도로 몰았고, 광주의 상처는 자폐적이 되어갔다. 오죽하면 518이야기로 소설 <봄날>을 쓴 임철우 작가는, 본인이 목격한 참상을 주변에 아무리 말해도 믿어주지 않아 작품으로 써야겠다고 결심했을 정도니까.



이것이 상무관. 해가 점점 져간다. 

저녁 데이트 때문에 지인을 기다리다가 되레 518민주광장과 저녁 데이트를 하고 있는 중.


민주의 종


민주의 종은 약 24억을 들여 2005년도에 완성했다. 그러나 설립 때부터 잡음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은 '대기업들의 작품'이었던 것 때문이었다. 민주의 종을 두고 각종 실랑이를 벌이며 타종조차 되지 않기를 수년, 지난 2015년에 드디어 타종이 재개되었다.

2015년에 구 전남도청사 앞은 완전히 바뀐 셈이다. 광주여행의 중심인 아시아문화전당과 시계탑, 민주의 종까지..


회화나무 공원


시계탑과 구 도청 건물 사이에 있는 범상치 않은 나무 한 그루. 시계탑과 함께 518민주화 운동을 지켜본 회화나무 한 그루다. 시계탑이 518을 지켜본 인공물이라면 이 회화나무는 유일한 식물이 되겠다.



노을은 져갈수록 진한 빛깔을 낸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묵묵히. 해가 져가는 광주시내와 무등산을 번갈아 바라볼 수 있는 곳. 전남 광주여행, 저녁 데이트 장소로 추천이다.

시계탑 덤불에 쪽지가 하나 올려져 있었다. 적어도 우린 따스한 존재였으니까, 라고. 적어도 따스한 존재였던 사람들이 40여년 전 구 전남도청 앞에 있었다. 싸웠고, 죽었다. 

노을이 다 져가는 금남로 518민주광장을 나서며 황지우 시인의 극시 <오월의 신부> 중 한 구절을 생각한다.


천사는 지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 다만 그들이 다녀갈 때 잠깐 머문 빛이 반짝일 뿐. 우리는 그 빛으로, 살짝 열렸다 닫히는 천국을 엿보지요. 


밤이 되기 전 마지막 빛. 역광을 한껏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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