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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남

국내여행코스로 갈만한 곳 목포 유달산 둘레길

Dondekman 2017. 1. 3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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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길어질수록 힘이 세다.

국내여행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둘레길이다. 둘레길이란 명소를 중심으로 주변을 돌도록 조성된 길인데, 지리산, 북한산, 등 대부분 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산의 능선을 타고 오르는 가장 짧은 구간이 아니라 되도록 걷기 좋은 완만한 구간을 잇기 마련이다. 군사적 목적 등, 그 효율성보다는 사람의 걸음걸이을 담은 굽이진 곳, 둘레길은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으므로, 역사와 이야기가 녹아있는 갈만한 곳이 많다.  

목포 유달산에도 둘레길이 있다. 길이 6.3킬로미터, 걷는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다. 외지에서 차로 간다고 생각하고 주차장부터 코스를 잡자면 유달산 주차장-목포시사-달성사-특정 자생식물원-조각공원-어민동산-봉후샘-낙조대-아리랑고개-수원지-뚝방길-학암사-유달산 휴게소까지다. 

나는 전날 낙조대쪽을 다녔고, 오늘 조각공원부터 갔으니까 갈만한 곳은 얼추 다 다닌 셈이다. 특정자생식물원에서 관리인 분이 알려준 길을 따라 유달산 주차장까지 가는 길을 택했다. 밥은 언제먹나, 아침을 안 먹고 나섰더니 배가 고프다. 


유달산 둘레길을 걷다보면 둘레길에 바로 붙어있는 목포시사의 대문을 발견할 수 있다. 목포시사는 구한말인 1907년, 당대의 대학자인 정만조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로, 백일장을 했던 장소이자 유학자들의 결사모임이기 근원지라고 할 수 있다. 1890년에 세워져 지역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던 유산정이 그 전신이라고 안내문에 써 있는데, 전통대로 지금도 봄, 가을이면 한시백일장이 열리고 있으며 수상작은 이렇게 집 마루에 전시되어 있다. 

안에 전시되어 있는 백일장 수상작을 읽어보았다. 예전에 한문을 좀 배운 적이 있어서, 내가 번역해보았다. 쓰신 분께 실례가 될 지 모르겠다. 


景無一物不宜亭

사물 하나 없는 경치에 정자 짓는 것은 마땅치 않다

畵手竟難丹復靑

화가는 마침내 붉은색 쓰기 어려운 곳에 청색을 덧칠한다

雁背曙光殘月郭

기러기는 새벽빛에 아직 남은 달의 윤곽을 등지고

鷗邊秋色白雲汀

갈매기는 가을경치 변두리, 흰구름 모래톱에 있다

江澄遠嶼頭頭露

강은 맑고 멀리 섬들은 알알이 맺힌 이슬같고

霧罷群山面面醒

안개가 물러가자 산 무리는 면면이 취기에서 깨어난다

愛爾尋常林下鳥

내 너를 사랑하여 늘상 수풀 밑에서 새를 찾았으니

慣人詩話近筵聽

사람에 익숙하게 하는 것은 근처 연회장에서 들은 시 이야기네


癸酉重九 石亭 金進元

계유년 9월 9일, 석정 김진원

  

아마 이날 시제가 새였던 모양인데, 내가 한 번역이 얼추 맞다면 세련된 이미지에 화자의 정서가 잘 녹아있는 작품이다. 특히 새벽 안개가 걷히면서 드러나는 섬과 산들이 아련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묘사가 좋고 내 너를 사랑하여 늘상 수풀 밑에서 새를 찾았으니/사람에 익숙하게 하는 것은 근처 연회장에서 들은 시 이야기네. 라고 읊은 것도 좋다. 외로움과 사람의 온기가 교차되는 지점에 시가 있더라니, 정말 백일장의 작품에 어울리는 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근데 계유년이 언제지? 만세력을 찾아보니까 적어도 2000년대엔 아직 오지 않았고 이전에는 1993년이 마지막 계유년이다. 꽤 오래전에 써진 작품이 되겠다. 

한문에 조예가 있으시다면 갈만한 곳, 목포시사를 나와 목포역까지 걷는 길에 라이온스공원을 발견했다.



사자 두 마리가 마주보는 석상이 있길래 들어가 본 라이온스 공원 우리는 봉사한다. 사자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 라고 써 있는 비석이 인상적이다. 이는 라이온스 클럽의 창시자인 미국 사업가 멜빈 존스의 말이다. 그렇지 풀을 먹지 않지대신 다른 짐승을 잡아 먹는다 인간이라면 인간이 가진 존엄성을, 인간 대신 나 자신을 집어 넣는다면, 내가 가진 고유의 개성과 자존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경이롭고도 무서운 말이다.

1917년에 설립한 라이온스 클럽은 210여국에서 회원이 140만이 넘는다고 한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르신들의 골프모임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는데, 어쨌든 동산은 잘 해놨다. 밑의 모여있는 소나무 풍경은 라이온스 클럽에 있는 정자 위에서 찍은 것이다. 저 숲 너머로 목포역과 그 주변의, 이른바 구도심이 있다. 국내여행코스로 목포를 생각하면 산책은 둘레길에서 하고, 밥먹으러 갈만한 곳은 목포역 구도심에서 정하면 될 듯 하다.

실제로 목적지를 보고 나니, 신기루를 보고 난 사막횡단자처럼 더 배가 고프고, 덥다. 서둘러 라이온스 동산을 나와 유달산 둘레길에 방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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